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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전력수급기본계획, '공급 확대'냐 '수요 관리'냐
에너지신문
헤드라인
2026-07-01 09:00
[에너지신문] 오는 2040년까지 국내 전력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가 마련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에너지 정책의 새로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과, 수요를 과대 예측해 또 다른 송전망 갈등과 전기요금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국회기후변화포럼이 개최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현황 점검과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는 전력수요 전망부터 발전원 구성, 송전망 확충, 지역갈등까지 12차 전기본이 안고 있는 거의 모든 쟁점이 한 자리에서 논의됐다.
▲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현황 점검과 향후 과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AI가 바꾸는 전력수급 공식
이번 전기본의 가장 큰 변화는 AI와 데이터센터, 첨단산업 전력수요를 기존 경제성장 추세와 별도로 반영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기존 수요예측만으로는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산업 전기화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기화 정책 등에 따른 추가 수요를 별도로 산정하고 있다.
허진 제12차 전기본 수요계획 소위원장은 이러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AI와 첨단산업 확대에 따라 기존 수요예측 방식만으로는 미래 전력수요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추가 수요 산정 방식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첨단산업과 데이터센터 수요를 별도로 반영하는 방향 자체는 타당하지만, 일부 전기화 수요는 다소 과대평가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히트펌프 보급에 따른 전력수요는 정부 추정치보다 실제 규모가 상당히 작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환경단체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얼마나 전기를 더 쓸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어디서, 무엇을 위해 전기를 사용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 투자계획을 사실상 확정 수요처럼 반영할 경우 전력수요 자체가 구조적으로 과대 산정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AI 시대, 원전·재생에너지만으로 충분한가
발전원 구성 역시 토론회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AI 시대에는 △Carbon-Free △Secure △Affordable △Distributed라는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에너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 같은 변동성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전 등 '청정 무변동성 전원(Clean Firm Power)'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장주기 저장장치(ESS), 송배전망 투자 등 추가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며, 원자력과 CCUS, 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 전원을 함께 활용하는 '기술중립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주장은 최근 세계 각국이 AI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과 LNG 발전을 다시 적극 활용하는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한다.
■석탄 조기폐쇄, 현실과 정책의 간극
이번 토론에서는 석탄발전 조기폐쇄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손용호 강릉에코파워 부사장은 현재 동해안 민간 석탄발전소들이 송전망 부족으로 설비 이용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기폐쇄까지 추진될 경우 막대한 좌초자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민간 석탄발전에는 약 18조원이 투자됐으며 대부분 최근 상업운전을 시작했기 때문에 2040년 이전 폐쇄가 현실화되면 투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손 부사장은 대안으로 AI 데이터센터와 민간 석탄발전 간 직접전력거래(PPA)를 허용해 일정 기간 설비 이용률을 높이고, 이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이러한 주장은 탄소중립 정책과는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전기본, 방향·제도 모두 손봐야"
환경단체는 전기본의 방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정부가 AI와 반도체 산업을 이유로 공급 확대에만 집중할 경우 결국 수도권 산업을 위해 지방에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계속 건설하는 구조가 반복될 것"이라며 "수요관리와 분산에너지, 직접전력거래, ESS 등 비송전망 대안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력수요 전망 과정에서 기업 제출자료와 산정 방식, 원자료 등을 모두 공개하고 독립적인 검증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승만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재 전기본이 지나치게 정부 중심으로 수립되면서 투명성과 신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데이터와 전망모형을 전면 공개하고 경제성, 전기요금 영향까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처럼 단일 계획이 아니라 복수 시나리오 기반의 '전망(Outlook)' 체계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제언했다.
이번 토론회는 12차 전기본을 둘러싼 갈등이 단순히 발전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AI 시대를 맞아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이를 위해 원전과 석탄을 얼마나 활용할 것인지,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AI와 데이터센터 수요를 어디까지 현실적으로 반영할 것인지를 놓고는 시각차가 컸다.
결국 12차 전기본의 성패는 발전원 비중보다도 전력수요 전망의 신뢰성, 지역 수용성, 전기요금 영향,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의 균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부가 이번 계획을 통해 AI 시대 산업경쟁력과 탄소중립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지, 향후 공청회와 정부안 확정 과정에서 사회적 검증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