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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섬’ 대한민국, 기후기술로 돌파구 찾다
에너지신문
헤드라인
2026-09-11 09:02
[에너지신문]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을 더 이상 환경문제에만 가둬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에너지와 제조업, 인공지능(AI), 과학기술정책을 함께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협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 펴낸 ‘대한민국 탄소 중립 융합 전략 케카헌’의 출발점이다.
▲ 대한민국 탄소중립 융합 전략 'K-기후기술 카본 헌터스'
책 제목인 ‘케카헌’은 K-기후기술 카본 헌터스(K-Climate Tech. Carbon Hunters)를 줄인 표현이다. 탄소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찾아내고, 이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산업과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처한 독특한 에너지 환경이다. 주변국과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이른바 ‘에너지 섬’인 데다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와 제한된 국토라는 제약까지 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조건을 약점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부족함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만들어온 한국의 경험을 기후기술 시대에 다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크게 네 개의 장을 통해 이 같은 논리를 풀어나간다.
1장에서는 역사와 철학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본다. 탄소중립을 특정 기술 하나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문명과 산업의 전환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에너지 사용 방식뿐 아니라 사회와 산업의 선택까지 바꾸는 문제라는 점을 짚는다.
2장에서는 한국의 에너지 현실로 시선을 옮긴다. 제목부터 ‘에너지 섬의 축복, K-전략의 뒷배’다. 에너지와 전력망의 지정학적 제약, RE100 산업단지와 탄소중립, 에너지 믹스 등을 다루며 한국이 가진 ‘결핍’을 새로운 전략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에너지 공급을 늘리는 문제를 넘어 어떤 전력을 어떤 방식으로 산업과 연결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3장에서는 책 제목인 ‘케카헌’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AI와 과학기술, 한국 제조업이 축적한 융합 역량을 기후기술과 연결해야 한다고 본다.
기술의 효율이 높아져도 전체 소비량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제본스의 역설’을 언급하며 단순히 효율 좋은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으로 탄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도 짚는다.
특히 AI는 저자가 주목하는 핵심 변수다. AI가 산업의 생산성과 기술혁신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막대한 전력과 자원을 소비하는 만큼, 청정에너지와 기후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술혁신과 탄소중립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AI와 에너지, 제조업을 각각 따로 보는 대신 하나의 산업·기술 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마지막 4장에서는 논의를 글로벌 무대로 넓힌다. 기후변화 대응은 한 국가의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만큼 국제 과학기술 협력과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한국이 보유한 과학기술과 제조업 역량을 바탕으로 아시아 기후기술 협력에서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도 모색한다.
이 같은 책의 성격은 저자의 이력과도 맞닿아 있다. 이상협 저자는 고려대학교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에서 환경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4년부터 KIST에서 연구해왔다.
기후환경 연구뿐 아니라 에너지환경 기술정책 분야에서도 활동하며 기술개발과 정책을 함께 경험했다. 재료에서 환경, 에너지와 과학기술정책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해온 저자의 이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융합’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다.
‘케카헌’은 특정 기후기술의 성능이나 경제성을 분석하는 기술서라기보다는 탄소중립 시대 대한민국이 어떤 산업·기술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는 전략서에 가깝다.
탄소감축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무엇을 경쟁력으로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도 특징이다.
결국 책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탄소중립을 산업의 비용과 규제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만드는 기회로 바꿀 것인가.
자원과 에너지가 부족한 조건에서도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 경쟁력을 키워온 한국이 기후기술 시대에도 다시 한번 ‘결핍을 경쟁력으로 바꿀 수 있는가’.
‘케카헌’은 그 해답을 에너지와 AI, 제조업, 과학기술정책을 연결하는 ‘융합’에서 찾고 있다.